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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생몰년대 미상, 신라 경덕왕때의 학자이자 총지, 호 빙월당 경주 설씨의 시조.
원효대사의 아들. 어머니는 요석궁 공주.
신라 십현의 한 사람. 이름처럼 어려서 총명 하였고, 경사에 두루 능통하였다 한다.
벼슬은 한림을 지냈고 주로왕의 자문역을 맡아 보았다.
유학과 문학을 깊이 연구한 학자로서, 일찍이 국학에 들어가 학생들을 가르쳐 유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가 창제한 중국 문자에 토를 다는 방법은 당시 중국 학문 섭취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즉 한글창제 이전엔 고유한 우리문자가 없었으므로 한자의 몸을 빌려 우리말을 나타냈는데, 이를 이두라하며, 이것을 그가 집대성하여 깊이 연구하여 규칙있게 사용함으로서, 비로서
경서 기타 한문학에서도 널리 사용하여 경전의 훈독을 우리것으로 하며 백성들을 가르쳤으니 이러한 방식은 한글창제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후세에까지 그가 추앙
받는 것은, 해동경학에 그가 끼친 공로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또한 유교뿐만이 아니라, 문학에도 매우 조예가 깊어 많은 저술을 편찬하였다고 하나, 현세에까지 전하여지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설총이 신문왕에게 얘기해서 책으로 저술하였다는, 왕자들이 유념하고 지켜야 할 내용인 화왕계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남아있다.
1022년(현종 13) 홍유후에 추봉되고, 문묘에 배향되었고, 경주의 서악서원에 제향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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