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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그럼 우리경산에는 어떤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는지 한번 귀를 기울여 봐요"
용산 무지개샘
옛날 이 곳 용산에 산정에 용이 살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작은 장수들이 고장을 침범하려는 적을 막고 이 지방 사람들을 구하고자 산성을 쌓을 것을 용에게 허락 받았으나 그들 수고를 덜고자 용이 사는 샘 주위의 돌을 마구 씀으로 미움ㅇ르 받아 석달간 가뭄이 들었다. 이에 이 곳에서 3일간 용서를 빌었는데 마지막 날에 무지개와 함께 소나기를 내려주었다 한다. 이 무지개샘은 이 지방 유일의 기우처(祈雨處)이다.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 용산에서 전승
하양 가무실 김씨네 묘터 구한이야기
하양 가무실 김씨네가 묘터를 잡기 위해 과부인 형수에게 주막을 열게하고 풍수에게 거짓행태를 무려 풍수를 집에 며칠 머물게 한 후 당대 발복하는 묘터를 잡아 묘를 쓰고 부자집에 장가들어 통사(수군대장)를 했다는 이야기다.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에서 전승
환성사 거북바위
이 절는 수월관 앞의 연못을 메우면 재앙을 받는다는 전설과 절터의 입구에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있는 한 절이 융성하리라는 두 가지 전설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드리 들르는 것을 귀찮게 여긴 주지가 이절의 연못을 메우고 거북바위의 목을 자르는 일이 저질렀다. 이에 갑자기 온 절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그 웅장하던 건물들을 모조리 불태우고 겨우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았으나 그 이후로는 절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에서 전승
팔공산의 두 큰스님
원효와 의상대사는 불가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에 입적하였으나 불가에서 만난 인연으로 서로간에 형(원효) 동생(의상)이라 부르며 각기의 학문에 전념했는데 학문에 대해서 서로간의 의견을 내세울 때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이 팽팽 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의상이 원효를 시험하려고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원효의 큰 덕에 감응한다는 전설이다.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서 전승
거북돌의 눈
와촌면의 불국사에 얽힌 이야기로 지금의 은해사를 말사로 가지는 상당히 큰 절이었다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골짜기마다 절이 있었고 채전(菜田)이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불교가 탄압을 받기 시작하고 과객들의 횡포가 심해지자 어떤 방편을 듣는데 산너머 솔밭에 있는 큰 거북돌에서 눈을 빼 버리면 손님이 안 온다하여 그리하였다. 그러자 청천하늘에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고 비가 오고 하더니 이 산, 저 산이 다 떠 내려와서 절이 다 묻혀버렸다. 큰 "미륵님" 하나 밖에 남질 않고 이 절을 따르던 은해사 암자가 큰 절이 되고 이 절이 은해사의 암자가 되어 버렸다.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에서 전승
혈이 끊긴 금박산
진량면 현내리에 위치한 이 산의 산봉이 학의 머리와 같다하여 이 산 아래에는 비석을 세우든지 지붕에 기와를 이을 경우 학의 머리가 무거워져서 마을이 망한다고 하였따. 한편 조선왕조 선조시 명나라에서 원군을 이끌고 명의 장수 이여송이 많은 장수가 태어날 형상이라하여 금박산도 혈을 끊어버렸다 한다. 경산시 진량면 현내리
울명고개
임진왜란 당시 한 여인이 3남매를 데리고 피난을 하다가 이 고개에 이르자 더 이상 모두를 데리고 도망갈 수가 없어 딸을 버려두고 도망가려고 하니 딸이 눈치를 채고 치맛자락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아 다급한 나머지 딸이 쥔 치마를 벗어버리고 피난을 가버려 딸은 그 치마를 안고 울다 죽었다하여 울명고개라 한다. 경산시 진량면에서 전승
도막샘
옛날 안동 하회마을의 류도식이 자인 원님으로 있을 때 유명한 약수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물을 먹으러 갔는데 이 유명한 샘에 이름이 없었다. 이에 당시 이방으로 있던 문장복(文章復)이 "도막샘"이라고 지어줄 것을 간청하여 그렇게 했다한다. 비가 오나 가물 때나 항상 물의 양이 똑같이 고여있고, 몸이 가려울 때나, 위가 좋지 않을 때, 쪽머리가 아플 때, 옻이 올랐을 때 이 물을 마시면 효험이 있어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러 왔다고 한다. 경산시 진량면 현내리에서 전승
도천산
도천산은 기러기가 함박산(함박꽃)을 찾아 하늘로 날라 올라간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 자인현에 있는 한장군이 이 산에서 토성을 쌓아 왜적과 싸웠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도천산에는 장군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 한장군이 앉았던 곳을 평평하고, 주먹으로 때린 부분에는 주먹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경산시 자인면 도천산에서 전승
마을 어구의 상여집
자인면 일언리에는 상여집이 없었다. 마을입구에 있는 도랑옆에 상여집을 짓고난 뒤부터 젊은 청년들이 하나씩 죽어 나갔다. 하루는 어떤 영감님이 이 앞을 지나면서 상여의 위치가 불길하다하여 사람들은 서둘러 상여집을 뜯어서 마을 뒤에 있는 공동묘지로 옮겼다. 그후로부터 아무런 이유 없이 청년들이 더 이상 죽지 않았다한다. 경산시 자인면 일언리에서 전승
만리장성을 향해가다 멈추어 선 바위
경산시에는 큰 바위가 많은데 모두가 걸어가는 상이라고 하며, 옛날에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기 위하여 사람들이 이 바위를 굴러 가다가 만리장성이 완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들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고 전하고 있다. 경산시 자인면 일언리에서 전승
며느리가 빠진 연지못
예전에 참으로 못된 시어머니가 있었는데 찌꺼기 밥이 남으면 며느리한테 한숟갈 주고, 없으면 주지 않아 며느리는 밥굶기를 예사로 했다. 참다 못한 며느리는 어느날 세수를 하고 새 옷으로 곱게 단장하고 시집을 때처럼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고 이곳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이곳을 연지못이라고 불렀다. 경산시 자인면 일언리
한장군 전설
도천산 밑 버들못 둑에서 한장군은 여자로 가장하여 그의 누이와 함께 꽃관을 쓰고 춤을 추었다. 이것이 곧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는 여원무(女圓舞)이다. 이 여원무로 왜병을 속여 대승을 하였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못둑에는 한장군의 칼흔적을 지니고 있는 바윗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참왜석(斬倭石)또는 검흔석(劒痕石)이라고 부른다. 경산시 자인면 계정숲에서 전승
용산과 산성
전설에는 원래 이 일대에 산이 없었고, 자인, 용성, 청도를 경계로 한 광활한 평야였다. 어느날 지금의 용산이 서 있는 정면쪽의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아낙이 이른 아침에 마을앞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큰 산같은 물체가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개 속에 쌓여 걸어가고 있던 산이 아낙의 방정에 그만 덥석 주저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경산시 용성면 용산에서 전승
검둥바위 흰둥바위
흰둥바위를 암바위, 건너편 솔밭의 검둥바위를 수바위라 하는데, 서로 그리워 하며 짝을 짓고자 하나 산이 갈라져 그 뜻을 이루지 못하므로 이 마을 사람들은 횽천리 흰둥바위 앞을 나무로 가려 서로 마주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흰둥바위 앞 계곡에 나무를 베고나니 용천리의 처녀총각들이 바람이 나서 도회지로 도망을 하는 불순한 일들이 있어 서둘러 나무를 심었다한다. 경산시 용성면 육동지역에서 전승
송림리 한지와 장군듬
개척 당시 마을 언저리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다하여 송림(松林)이란 지명이 붙은 용성면 송림리에는 다른 지방에 없는 민간 토속 신앙이 전래하였는데 이가 곧 한장군 신앙이다. 해마다 오월 단오날에 온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한장군제를 올렸는데 일제때 와서 왜놈들의 저지로 단오제가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오르내리며 주워 모았던 돌무더기와 칡덩굴은 현재까지도 무성하여 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장군듬]이라 부르며 감히 근접하지 못한다고 한다. 경산시 용성면 송림리
비오재
전설에 의하면 이 고개길은 한 여인이 이곳에서 장사길에 나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망부의 한이 서린 고개로 망부의 애틋한 사랑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고개를 까마귀가 나는 고개라 하여 비오(飛烏)재라 하고 이들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을 세세연년 전하고 있다. 경산시 용성면 가척리에서 전승
대종리 세나벌의 전설
대종리와 소천을 잇는 산 아래에는 세나벌이라는 대종리의 조그마한 자연부락이 있었는데, 이 마을의 좌향은 남향이고 마을 앞에는 세나벌이라는 언덕배기의 큰 바위가 있기 때문에 부락을 [세나벌]이라 하였다. 갑부인 김첨지의 지나친 욕심과 이 마을 사람들의 시기심으로 마을 전체가 몰락했다. 인간들의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일깨워주는 전설이다. 경산시 용성면 대종리에서 전승
구룡산과 구룡정
옛날 동해의 용왕에게 딸이 셋 있었는데, 계모의 학대가 심해졌다. 용왕은 딸을 안타깝게 생각해 한 딸을 육지에 나가 살도록 하였다. 이 때 터전을 잡게 된 곳이 바로 지금의 구룡산이 되었으며, 공주는 9명의 용을 낳았는데 이 용들이 승천한곳에 깊은 웅덩이를 남겼는데 구룡정이라 하였다.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에서 전승
부엉새와 여우의 울음과 죽음
남산면 사월리(沙月里)에서는 옛날부터 "부엉새나 여우가 울면 마을에 초상이 난다." 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 전설을 믿고 있어 지금도 이 마을 사람들은 부어이나 여우가 울지 않을까 큰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경산시 남산면 사월리
북더샘에 관한 전설
어느해 장군이 될 아이를 낳은 우매한 부모는 장차 자라서 역적이나 되지 않을까 두려워 아이를 죽여버렸다. 그러나 그 아이가 죽는날 이 마을의 샘에 하늘에서 용마가 내려와 북을 치면서 크게 슬퍼 했다고 하여 그 샘을 북더샘이라 부른다. 경산시 남산면 하대2리에서 전승
혈이 끊긴 배미재
배미재는 압량면에 소재한 조그만 산으로 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일명 사산(巳山)이라고도 하는데, 예전에 이 산은 신력(神力)이 있었다. 그 산 밑인 산촌리, 내리, 용암리 드에서 못된 여자가 났다. 그 때만 하더라도 양반 세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그런 일이 나면 망해 버렸다. 그럴 때 이성재라는 지리박사(풍수)가 방편을하여 다시는 못된 여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인이 장군이 나올 형상이라하여 혈을 끊었다고도 전한다. 경산시 압량면에서 전승
오목천의 이름 유래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부하들을 이끌고 하천변에 진지를 구축하였을 때 왜구가 야간에 몰래 기습하자 까마귀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하여 장군과 부하들은 급히 진지를 정비하여 적군을 물리칠 수 있어 훗날 이 천을 오목천(烏沐川)으로 이름 지어 부른다고 전한다. 경산시 압량면에서 전승
영동당 전설
전영동은 고려 공민왕때 사람으로 그는 항상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고 하며 평생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않고 무적만 먹었다. 유언으로 죽으면 풍신이 되어 생민에게 돌림병을 옮기는 귀신인 이귀를 물리치겠노라고 하였다. 그 후부터 고을 사람들은 이날이 되면 무우와 찰밥으로 복을 비는 풍습이 생겼다. 경산시 남천면에서 전승
남천면 신석리의 납돌사
신석리 마을 뒷산 기슭에 신라 선덕여왕 시대에 세웠다는 납돌사란 절이 있었는데 이 납돌사 개울물의 물길을 돌리려고 땅을 파면 붉은 피가 솟구쳐 올라 중단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번창하던 마을이 삽시간에 각종 재난이 발생하여 사찰과 마을 전체가 폐혀가 된것은 산의 혈이 끊어졌기 때문이라 전해오고 있다. 경산시 남천면 신석리에서 전승
납돌 약수탕
지금부터 약 150여년 전 이곳에서 생활하던 안동 권씨가 슬하에 딸 6명을 두고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납돌내지 안 산기슭에 있는 두꺼비 바위에서 기도를 올리던 중 바위가 약수탕 자리로 옮겨가는 꿈을 꾸었는데 다음날 그 곳에 가서 바위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고 위장병을 고치고 아들 3형제를 낳아 번창하였다는 전설이다. 경산시 선의산에서 전승
성암산 산신령의 거처 범굴
사람을 잡아 먹은 호랑이가 목구멍에 비녀가 걸려 많은 고통을 받고 있던 중 어느 노승을 만나게 되어 간절히 도움을 청하자, 호통을 치며 목에 걸린 비녀를 뽑아주니 호랑이는 그제서야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고개 숙여 참회를 하였다. 범굴로 데리고 와 동자와 한식구가 되었는데 그로부터 동자승과 호랑이는 친구가 되어 열심히 수행생활을 계속하였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동자승은 성암대사가 되었으며 호랑이는 성암산 산신령이 되었다한다. 경산시 사정동 성암산
백천동에서 사동가는 곳의 당말래이 기자 전설
백천동에서 사동으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길에 암당과 수다이 있었는데 이 암당과 수당에 자손이 없는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면 자손을 본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이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기도하러 몰려 들었다고 한다. 경산시 백천동. 사동에서 전승
죽음을 부른 남매지의 가물치
옛날에 남매지 근방에 "오"씨가 모여 살았다. 그 중에 어떤 한 사람이 장에 갔다 돌아 오는데 못 한가운데 불이 빨갛게 있었다. 그 곳을 파보니 중앙에 큰 가물치 한마리가 이어서 그 가물치를 집에 가지고 와서 국을 끓여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이 국을 먹은 동네 사람이 모두 죽어서 마을도 망하고 말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경산시 계양동에서 전승
남매지의 유래
조선 선조때 경산시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오누이와 눈먼 홀 어머니 세식구가 가난하나 정답게 살았다. 오빠는 여동생의 식모살이로 과거 여비를 구해 한양을 가고 이를 틈탄 황부자 아들이 여동생을 겁탈, 정절을 잃은 여동생이 자결하고 그 어머니는 이를 말리려다 빠져죽는다. 얼마후 장원급제하여 돌아온 오빠 또한 남매지에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다. 그후 마을 사람들은 불쌍한 오누이를 기리기 위해 이 못을 남매지라 불렀다. 경산시 계양동에서 전승
꽤 많은 전우식
옛날 경산에 전우식이라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는데 영리하였다. 어느날 이 사람이 서울 사람한테 돈을 빌려 쓰고 갚을 날짜가 지났다. 돈을 갚아 달라고 하자. 남매지에 빠져죽은 척하고는 잔꾀를 내어 도리어 돈을 더 받아냈다는 이야기다. 경산시 계양동 일원에서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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